우리나라의 사망률을 보면 여름에는 낮았다가 겨울에는 높은 파도 형태가 1년을 주기로 반복된다 (아래 그림 1 참조). 이것이 사망률의 계절성(seasonality)이다.
사망률을 겨울에 높이는 가장 큰 요인 두 가지는 심장마비와 독감(인플루엔자 감염증)이다 [1]. 이상의 두 요인 중 독감은 인플루엔자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전염병이다. 인플루엔자가 겨울에 주로 활동한다는 것은 아래 그림 2에서도 확인된다.
참고로 “독감”은 그 이름과는 달리 독한 감기가 아니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증이다. 일반 감기는 리노바이라스와 인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대부분이다. 위의 그림 2의 아래 부분에서 보듯이 감기와 같은 발열성 호흡기 질환 환자는 일년 내내 존재하지만, 바이러스 검사를 통해 인플루엔자가 검출되는 것은 특정 계절에서 만이다. 이처럼 독감은 그 활동이 계절성을 띠기 때문에 계절성 유행병 (seasonal epidemic) 가운데 들어간다. 계절성 유행병의 또 다른 예로 인간 코로나바이러스(HCoV) 감염증이 있다. 결국, 겨울에 사망률이 높고 여름에 낮은 현상이 반복되는 두 가지 요인 하나는 계절성을 띠는 바이러스 활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수수께끼인 독감의 계절성
얼핏 생각하면 ‘독감이 겨울에 유행하는 것은 날씨가 추워서 그렇다’ 생각할 수 있겠으나, 날씨가 춥지 않은 열대 지방에서도 독감은 계절성을 띤다. 열대 지방에서의 계절성이 기타 지역과 동일한 형태는 아니나, 분명한 것은 독감이 추운 날씨 때문에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래 그림 3 참조).
독감의 계절성이 기후나 날씨와 상관이 없다면, 상관성이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아는 것은 관심 지역의 위도와 큰 상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 4 참조). 사실 위도와 큰 상관성이 있는 자연 현상 중 하나가 계절의 변화양상이기에, 독감의 유행 패턴에 대해서도 “계절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위도가 같다면 경도가 다른 두 지역에서 유사한 독감 발발 패턴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그림 5 참조).
여기서 잠시 언급할 것은 ‘상관관계’가 ‘원인관계’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통계적으로 볼 때 거리에 선글라스를 판매량이 높을수록 아이스크림 판매량도 늘어나는 것을 관찰한다면 선글라스 판매량과 아이스크림 판매량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선글라스 판매가 아이스크림 판매를 높인다든지 반대로 아이스크림 판매가 선글라스 판매를 촉진한다는 원인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계절의 변화 양상이 위도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경우에도 위도 자체가 계절 변화의 원인은 아니다. 계절 변화의 진짜 원인은 지구의 자전축이 태양에 대한 공전 평면과 직각이 아니라 약 76.5도의 각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로 인해 각 지역의 일조량이 지구 공전 주기에 따라 변하고, 그 변화량이 위도에 의존하기에 결국 위도와 계절 변화 양상이 큰 상관성을 갖는 것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면과 직각이었다면 계절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독감의 계절성 역시 위도와 큰 상관관계를 갖지만 위도가 원인은 아니다. 아직 독감의 계절성의 구체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계절 변화의 근본적 원인이 지구 자전축의 공전면에 대한 기울기와 그로 인한 일조량의 변화에 있음을 생각할 때, 독감의 계절성 역시 태양광의 스펙트럼 그리고 그 세기와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아래 그림 6을 보면, 태양 고도가 수직인 위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남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독감 발발의 위도는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독감의 계절성의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더라고, 계절성으로부터 얻는 시사점은 이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과실수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잎이 떨어지고, 철새가 떠났다가 돌아오는 등, 우리 주위에 계절성을 띠는 수많은 자연 현상들은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면에 대해 직각을 이루지 않는다는 큰 스케일의 사실과의 높은 상관성을 떠나서 설명할 수 없듯이, 독감 역시 그 큰 스케일의 상관성을 떠나 유행 양상을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독감의 계절성을 설명하려는 가설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 자주 언급 되는 것으로 날씨가 추우면 사람들이 실내에 더 모여 있기 때문에 혹은 환기 부족으로 인해 겨울에 발병률이 올라간다는 식의 설명 시도가 있지만 증명 된 것은 없다. 오히려 온화한 기후 지역에서 여름에 사라지다시피 하는 독감 발병률을 고려할 때 상기한 것들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보다는 겨울의 평균적 비타민 D 생성 저하가 면역 저하로 이어져 독감 발병률을 높인다는 가설이 [2] 설득력이 높다. 비타민 생성을 위해서는 태양 고도가 적정 각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태양의 낮 최고 고도가 위도와 계절에 의존한다는 것, 그리고 비타민 D와 장내미생물군 사이의 상호작용을 고려할 때 [3], 비타민 D를 독감의 계절성 설명에 도입하는 시도에 나는 기대를 건다.
계절성을 띠는 다른 바이러스들
계절성을 띠는 전염병은 독감 만이 아니다. 감기를 일으키는 인간 코로나바이러스 (HCoV) 네 종과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RSV) 역시 계절성을 띤다 (그림 7 참조).
본 문서를 작성하는 현재 (2021년 3월)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코로나19 감염증을 일으키는 SARS-CoV-2 역시 인간 코로나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독감)처럼 계절성을 띌 것으로 나는 예상한다.
2021년 7월 추가: 예상했던대로 코로나19 역시 계절성을 띈다. 아래 그림 8은 비슷한 위도에 있는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의 코로나19 사망자 추이인데, 겨울에 기승하고 여름에 잠잠한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상황(그림 9)도 마찬가지다:
남반구는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이기 때문에 사망자 추이도 역전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를 비교해보면 그런 역전 현상이 분명히 보인다 (그림 10):
End Notes
- W.R. Keatinge, “Winter mortality and its causes” Int J Circumpolar Health, Nov 2002, 61 (4), pp. 292-9, http://doi.org/10.3402/ijch.v61i4.17477 ↩
- J.J. Cannell et al, Epidemic influenza and vitamin D, Epidemiol. Infect. (2006), 134, pp. 1129-1140 ↩
- L. Malaguarnera, Vitamin D and microbiota: Two sides of the same coin in the immunomodulatory aspects, Int. Immunopharmacol. (2020 Feb), 79:106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