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활동제한(lockdown)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나

코로나 감염증에 대한 주류의 이야기(narrative)에 도전해야 할 필요에 대하여 마틴 쿨도르프 (Martin Kulldorff,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가 말한다
  • 코로나 대유행과 관련된 활동제한(lockdown) 정책의 문제
  • 활동제한에 대한 대안으로서 집중보호(focused protection)
  • 그레이트배링턴 선언 (Great Barrington Declaration)
  •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과 검열

활동제한(lockdown)은 다양한 방역 지침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예를 들어 다음이 있다:

  • 대면 수업 금지 혹은 비대면 병행
  • 음식점이나 기타 영업 제한
  • 스포츠, 문화 행사 제한
  • 여행 금지
  • 재택 근무령
  • 의료 또는 치과 예약 연기
  • 통행금지
  • 자가격리 등

원작: Why I spoke out against lockdowns
번역 (원저자 허락): 홍승헌 (Hun Hong)


나는 활동제한에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전염병 발병에 대해 연구 한 경험이있는 공공보건 과학자로서 나는 침묵 할 수 없었다. 공공보건의 기본원칙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노동자들이 희생 당하도록 버려지고 있는데 그럴 수 없었다. 활동제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비방 받도록 버려지고 있는데 그럴 수 없었다. 활동제한에 대한 과학적인 합의는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합의가 존재한다는 착각을 터트려야만 했다.

코로나에 관한 두 가지 주요 사실들은 일찍부터 내게 분명했다. 첫째, 이탈리아와 이란에서의 초기 발병을 볼 때, 이것은 전 세계로 결국 퍼져 많은 사망자를 초래할 심각한 전염병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둘째, 중국 우한에서 나온 데이터를 볼 때, 사망률이 연령대에 따라 큰 차이가 있으며, 젊은이와 노인 사이에는 천배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큰 안도감을 얻었다. 나는 십대와 다섯 살 된 쌍둥이를 혼자 양육하는 애비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내겐 나보다 자녀들이 더 중요하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대유행(pandemic) 때와는 달리, 어린이들은 매년 발생하는 독감이나 교통사고에 비해 코로나를 두려워 해야 할 이유가 훨씬 적었다. 아이들은 피해 받지 않고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사회전체를 위한 결론은 분명했다. 우리는 고령층과 고위험군을 보호하면서 젊고 저위험군에 속한 성인들이 사회를 계속 돌아가게 만들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휴교령이 내려지고 양로원은 보호받지 못했다. 왜 그랬단 말인가? 터무니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펜을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전염병 발병에 대한 나의 지식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으로 하여금 내 의견에 관심을 갖게 만들 수 없었다. 오히려 내 고향 스웨덴에서 관심을 받아 주요 일간지에 기고문을 실었고 나중엔 <스파이크드>(Spiked)에도 한 편이 실렸다. 나와 유사한 생각을 가진 다른 과학자들도 비슷한 걸림돌을 직면했다.

우리는 유행병을 이해하기 보다는 두려워하도록 독려 받았다. 삶 대신 활동제한과 죽음을 맞았다. 지연된 암 진단들, 악화된 심혈관 질환 결과들, 피폐해가는 정신 건강, 그 외에도 훨씬 많은 부수적 공공보건 피해를 활동제한으로 인해 입었다. 역사상 가장 큰 공공보건 실패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번 사태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어린이, 노인, 그리고 노동자들이었다.

2020년 봄 대유행 내내 스웨덴은 1~15세 어린이 180 만 명 모두에게 어린이집과 학교를 열어 두었다. 그 가운데 아이들에게 진단검사나, 마스크쓰기, 물리적 칸막이, 또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규제를 가하지 않았다. 그 정책은 해당 연령군에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를 정확히 0명 발생시켰고, 교사들의 코로나 감염율은 다른 직업군에서의 평균과 유사했다. 스웨덴 공공보건국은 이러한 사실들을 6월 중순에 보고했지만, 미국의 활동제한 지지자들은 여전히 휴교를 촉구했다.

지난 7월 <뉴 잉글랜드 의학 저널>(New Englend Journal of Medicine)은 “대유행 기간 동안의 초등학교 재개”에 대한 논문을 실었다. 기가 막히게도, 그 논문은 대유행 내내 학교를 열어 두었던 유일한 주요 서방 국가에서 나온 증거자료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새로운 약을 평가하면서 위약 대조군의 데이터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원저자 마틴 쿨도르프, 하버드 대학 (Harvard Medical School) 의학 교수
[출처: Wikimedia Commons]

기고문 게재의 어려움 때문에 나는 거의 휴면 상태였던 트위터 계정을 사용하여 정보를 전하기로 했다. 학교들과 관련된 트윗을 검색하여 스웨덴 연구결과에 대한 링크 달아 댓글을 달았다. 댓글 중 몇몇은 재공유되었고, 이로써 스웨덴 데이터가 어느정도 주목을 받았다. 이로써 <스펙테이터>(Spectator)로부터 기고문 요청을 또한 받았다. 8월에는 마침내 미국 언론을 뚫어 CNN에 휴교에 반대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 스페인어판 CNN에 글을 실었다. 영문판 CNN은에 내 기고문에 관심이 없었다.

언론에 분명 어떤 문제가 있었다. 내가 아는 전염병학자 동료들 대부분은 활동제한 대신 고위험 집단에 대한 집중보호(focused protection)를 선호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활동제한을 지지하는 과학적 합의가 있는 듯 전했다.

9월에는 제프리 터커(Jeffrey Tucker)를 AIER(미국 경제 연구소)에서 만났다. 대유행이 있기 전까지 나는 그 단체에 대해 들어본 일이 없었다. 우리는 대유행에 대한 언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언론인들을 뉴잉글랜드 지역의 그레이트 배링턴(Great Barrington)으로 초대하여 전염병학자들을 만나 더 심도있는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하였다. 나 외에도 두 명의 과학자를 자리에 초대했다: 세계 최고의 전염병학자 가운데 하나인 옥스포드(Oxford) 대학의 수네트라 굽타(Sunetra Gupta)와 전염병 및 취약 인구 전문가인 스탠포드(Stanford) 대학의 제이 바타차리아(Jay Bhattacharya)였다. AIER가 생각치 못한 것인데, 우리 셋은 활동제한 대신 집중보호를 주장하는 선언문을 또한 작성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그것을 그레이트배링턴 선언(GBD)이라 이름 붙였다.

그레이트배링턴 선언을 작성한 (좌에서 우) 마틴 쿨도르프, 수네트라 굽타, 제이 바타차리아
[출처: Wikimedia Commons]

활동제한에 대한 반대는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과학자들이 활동제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을 때 그들은 무시 당했고, 극단적인 의견으로 여겨지거나, 적절한 전문자격증이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우리는 저명한 세 대학의 세 선임 전염병학자들이 작성한 것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예상이 맞았다.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것은 좋았다.

어떤 동료들은 “실성한”, “무당”, “대량 살해범”, “트럼프주의자” 같은 별명을 우리에게 던졌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뒷돈을 받고 그런다고 비난했다, 비록 누구도 우리에게 한 푼 지불하지 않았지만. 왜 그렇게 악랄한 반응을 보였을까? 그 선언은 수 년 전에 만들어진 많은 대유행 대비 계획들과 맥락이 같았는데 말이다. 바로 거기에 곤란함이 있었다. 집중보호를 반대할 좋은 공공보건 논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왜곡과 비방에 의지해야 했던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활동제한을 지지함을써 끔찍하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자인해야 했다.

어떤 활동제한 지지자들은 활동제한이 목적을 달성했고 더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주장이 허수아비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불과 몇 주 만에, 동일한 비평가들은 능히 예측 가능한 2차 대유행 동안 활동제한을 재부과하는 것에 찬사를 보냈다. 우리가 고령층을 보호할 방법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우린 방안을 우리 웹사이트기고문들을 통해 이미 밝힌 터였다. 우리는 “될대로 되라”는 전략을 선전했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집중보호는 그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역설적이게도 활동제한 규제들은 “될대로 되라”는 전략을 질질 끄는 형식으로서, 연령대에 따른 감염율이 “될대로 되라”는 전략과 같은 분포를 따른다.

선언문을 작성하면서 우리는 공격 앞에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있음을 자각했다. 그것은 두려운 일일 수 있지만, 로사 팍스(Rosa Parks)가 말했듯이: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은 것은 결단이 서면 두려움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당위를 아는 것은 두려움이 물러가게 한다.” 뿐만 아니라, 언론계와 학계의 공격이 아무리 악랄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서 왔다. 어차피 공격은 우리 보고 들으라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목소리를 냈고 계속 그렇게 할 것이었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다른 과학자들이 목소리 내는 것을 좌절시키는 것이었다.

20대에 나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과테말라에서 국제 평화 여단(Peace Brigades International)이라는 인권 단체에서 일했다. 우리는 무력 암살단 의해 위협, 살해, 실종되는 농부들, 노조 노동자들, 학생들, 종교 단체, 여성 단체 및 인권 옹호자들을 보호했다. 내가 함께 일했던 용감한 과테말라 사람들은 훨씬 더 큰 위험을 직면했지만, 암살단은 한때 우리 집에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다. 그 때 그런 일을 내가 할 수 있었다면, 지금 내 거주지의 사람들을 위해 그보다 훨씬 작은 위험을 감수 못할 것은 뭐란 말인가? 내가 코크(Koch) 가문의 자금을 받는 우익이라는 거짓 비난을 받았을 때 나는 조금도 괘념치 않았다. 기득권 종복들과 탁상공론 혁명가들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그레이트배링턴 선언 이후 활동제한의 대안으로서 집중보호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은 종지부를 찍었다. 오히려 전 세계에서 요청이 왔다. 나는 흥미로운 대조를 주목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언론이 쉬운 질문을 던지면서 우호적이거나 교활한 질문과 인신공격을 던지면서 적대적이거나 어느 하나였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 언론인들은 어렵지만 적절하고 온당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레이트배링턴 선언을 살피고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언론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부분의 정부들은 그들의 실패한 활동제한 정책을 지속했지만, 상황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점점 더 많은 학교가 재개교하였고, 플로리다는 (우리의 조언에 일부 근거하여) 집중보호를 위해 활동제한을 거두었고, 활동제한 지지자들이 예측한 부정적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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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안전하진 않지만 필수적이다”

활동제한으로 인한 방역실패가 점점 더 분명해지자 공격과 검열은 감소하기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구글(Google) 소유의 유튜브(YouTube)는 플로리다 주지사 론 드산티스(Ron DeSantis)와의 원탁회의에서 나와 동료들이 아이들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언급하는 동영상을 검열했다. 페이스북(Facebook)은 우리가 그레이트베링턴선언(GBD) 계정을 통해 고령층 예방 접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친(親)백신 메세지를 게재했을 때 GBD 계정을 폐쇄했다. 트위터(Twitter)는 내가 어린이와 감염된 이력이 있는 사람들은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다고 쓴 게시물을 검열했다. 그리고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내가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의 코로나 백신을 고령의 미국인들에게 보류하면 안된다고 주장하자 백신 안전 실무단에서 나를 제명했다.

트위터는 심지어 내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고 내 계정을 잠갔다:

“마스크가 자신을 보호 할 것이라고 순박하게 속임 당한 결과, 고령의 고위험군 중 일부는 제대로 사회적 거리를 두지 않았고, 그 결과 일부는 코로나로 인해 죽었다. 비참하다. 공공보건 공무원과 과학자는 시민들에게 항상 정직해야만 한다.”

이처럼 압력이 증가한 것이 앞뒤가 안맞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만약에 우리가 틀린 것으로 들어났다면, 우리의 동료 과학자들은 우리를 불쌍히 여겼을 테고 언론은 우리를 이전처럼 무시했을 테다. 우리가 옳았음은 정치, 언론, 정보통신대기업, 혹은 과학계의 막대한 권력자 몇몇을 우리가 난처하게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결코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유행은 지금도 계속 되는 큰 비극이다. 79세의 내 친구는 코로나로 죽었고, 몇 달 후 그의 아내는 암을 제때 검진 받지 못해 치료를 시작도 못하고 죽었다. 대유행 동안 사망자 발생은 불가피하나, 활동제한이 고령층을 보호할 것이라는 순진하면서도 잘못된 믿음으로 정부는 집중보호의 여러 표준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대유행을 질질 끎으로써 고령층이 자신를 보호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집중보호의 전략을 취했더라면, 내 친구와 그의 아내는 물론 전 세계의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 살아있을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활동제한은 젊고 저위험군에 속하면서 재택근무하는 전문직 — 언론계, 법조계, 과학계, 금융계 — 종사자들을 보호하였고, 그것을 위한 희생은 어린이들, 노동자들, 그리고 빈곤층의 등에 지워졌다. 미국의 경우 활동제한은 인종차별 정책과 베트남 전쟁 이래 노동자에 대한 가장 큰 폭력이었다. 전쟁을 제외하고는 내 생애에 이보다 더 큰 규모의 고통과 불의를 가져온 정부의 조치는 거의 없다.

전염병학자로서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왜 과학자가 되려고 한단 말인가? 용감하게 목소리를 낸 많은 사람들이 편안히 침묵을 지킬 수 있었다. 그랬더라면 더 많은 학교가 여전히 휴교하고 있을 것이고, 부수적 공공보건 피해는 더 컸을 것이다. 그처럼 비효율적이고 파괴적인 활동제한에 맞서 싸우고, 글을 쓰고, SNS(인터넷 소통 공간)에 올리고, 동영상을 만들고, 지인들과 대화하고, 학교 이사회에서 발언하고, 거리에서 시위하는 멋진 사람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당신이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라면, 당신과 함께 일하며 연대한 것이 참으로 영광스럽다. 언젠가 우리가 대면하여 만나길 바라며, 그날이 오면 함께 춤추길. Danser encore! (다시 춤추자!)